사천을 빛낸 인물 학술세미나 열려
사천문화원
사천문화원은 사천을 빛낸 문화인물 "구암 이정"과 "부용 영관"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지난 26일 사천 문화원 대강당에서 열었다.
이날 "구암 이정의 학문 표적"을 발표한 경상대 이상필 교수는 "구암 이정(1512~1571)은 1544년 그의 나이 33세 이후 퇴계를 사사하여 그 학문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학문을 이루려 하였음은 물론, 인근 고을에 거쳐하던 남명과도 끊임없이 친분을 유지하며 그 고상한 정신 경계를 추앙하여 자기화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며 "구암의 "신명사부"는 남명의 "신명사도명"과 명칭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남명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의사상을 자기화 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구암이 퇴계만을 스승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남명도 자신의 학문 표적으로 삼아 평생을 성의와 집념으로 위기지학에 종사했던 인물이라고 결론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김윤수 대전대 교수는 "벽송 선맥과 부용 영관"이란 논문을 통해 "부용 영관(1485~1571)은 사천시 삼천포 출신의 고승으로 벽송 지엄의 선맥을 이어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라는 두 걸출한 쌍벽의 제자를 배출하여 조선 후기 승려들이 다 그들의 후손으로 형성되게 한 시조격의 인물"이라며 "조선 선불교의 초기 핵심인물인데 비하여 종합적인 연구 논문 1편 없는 한국 불교 연구사에서 홀대받고 있는 처지"라면서 이번 발표가 그 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
김기원 전 진주산업대 교수는 토론을 통해 "부용 영관의 전기상에 출생지가 진주로 기록된 것은 삼천포는 진주목 사천현의 삼천포 진에 속함으로 총괄적으로 진주로 기록되었다고 본다"며"선사의 출생지는 삼천포 짚은개(현 대포동 심포마을)로 밝힌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