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실상과 남명학파 동향 생생히
남명학硏, 정경운의 ‘고대일록’ 완역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이사장 최문석)은 최근 ‘고대일록’을 완역해 임진왜란의 실상은 물론 당시 의병활약상과 남명학파 동향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대일록’은 경상우도인 함양 일대에서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유사, 의병장 김면의 소모종사관 등으로 활약한 정경운이 쓴 전쟁 체험에 대한 기록으로, 1592년 4월 23일부터 1609년 10월 7일까지 18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공문서나 사문서를 참고해 비교적 객관적·사실적으로 역사를 전하고 있으며, 특히 1592년부터 1593년까지의 임진왜란 초기 사회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들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사대부들이 겪은 애환과 향촌사회 연구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 또한 다수 포함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조카가 산에 이르러 정아(貞兒)의 시신을 찾았다. 머리가 반쯤 잘린 채 돌 사이에 엎어져 있었는데, 차고 있던 칼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왜적을 나무라면서 삶을 버리고 절개를 온전히 하였으니, 곧도다! 내 딸이여!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함양 일대에서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유사(召募有司·군사를 모으는 관리)로 활약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한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1556~?)은 1597년 8월 21일자 일기에서 왜군에 무참히 살해당한 딸의 시신을 찾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썼다.
고대일록의 저자 정경운은 남명학파의 주요 인물인 내암 정인홍의 제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생했을 당시엔 함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1592년(선조 25년) 4월23일부터 1609년(광해군 원년) 10월7일까지 약 18년에 걸쳐 쓴 일기인 ‘고대일록’(4권4책)에는 그가 전쟁 중 직접 겪고 보고 들었던 개인·가족·지역사회의 참상은 물론 의병의 활약상, 위정자들의 부정부패, 사림의 분열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임란을 전후한 시기의 일기류로는 황윤석의 ‘이재난고’, 류희춘의‘미암일기’, 오희문의 ‘쇄미록’등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번역된 ‘고대일록’은 경상대 오이환 교수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고대일록’은 1986년 처음 학계에 소개된 이후 주목받았지만 번역이 되지 않아 일반인은 물론 전공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번역작업에 참여한 정우락 경북대 교수는 “‘고대일록’은 미시사적 입장에서 임진왜란의 실상은 물론 당시 의병활약상과 남명학파 동향, 서원경영권을 둘러싼 향촌사회의 분열상 등 전쟁기 향촌사회의 일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경남일보 강동욱 기자 |